반도체 파운드리를 이해할 때 가장 먼저 생기는 질문이 있습니다. 엔비디아처럼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이는 회사라면 왜 반도체 공장을 직접 짓지 않고 TSMC나 삼성전자에 생산을 맡길까요?
답은 단순히 “공장이 비싸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현대 반도체 산업은 칩을 설계하는 회사와 실제 웨이퍼를 생산하는 회사가 서로 다른 전문성을 키우면서 발전했습니다. 엔비디아는 이 구조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칩의 구조와 기능은 직접 설계하지만 실제 웨이퍼 생산과 일부 패키징은 외부 전문업체에 맡깁니다.
최근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이 분업 구조의 힘이 더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2026년 2분기 TrendForce 집계에서 TSMC의 시장점유율은 72.5%까지 올라갔고 삼성 파운드리는 5.9%, 중국 SMIC는 5.4%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 숫자를 단순히 “TSMC 1위, 삼성 2위”로만 보면 반도체 산업의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엔비디아가 공장 대신 설계에 집중하는 이유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팹리스(Fabless)를 자체 웨이퍼 제조능력이 없거나 제한적인 반도체 설계회사로 설명합니다. 반대로 파운드리(Foundry)는 다른 회사가 설계한 반도체를 계약에 따라 생산하는 제조업체입니다.
엔비디아는 실제로 공식 연차보고서에서 자신들의 제조전략을 fabless and contracting manufacturing strategy라고 설명합니다. TSMC와 삼성전자 같은 파운드리에 웨이퍼 생산을 맡기고, 메모리와 패키징 역시 여러 전문 공급업체를 이용합니다.
이 구조를 택하면 엔비디아는 수십억·수백억 달러 규모의 공장을 계속 건설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대신 GPU 아키텍처, 소프트웨어, CUDA 생태계와 새로운 AI 연산 방식에 자본과 엔지니어를 집중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TSMC 같은 파운드리는 여러 고객의 칩을 동시에 생산함으로써 막대한 제조설비의 가동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한 회사가 자기 제품만 생산하는 것보다 여러 설계회사의 물량을 모아 공장을 가동하는 편이 초대형 설비투자의 경제성을 확보하기 쉽습니다.
설계도를 TSMC에 보내면 바로 칩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반도체 설계와 생산은 일반 제품의 외주생산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설계회사가 회로도를 완성했다고 해서 어느 공장에서나 바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첨단 반도체를 양산하려면 해당 파운드리의 공정기술에 맞춰 설계를 조정하고, 시험생산을 거치고, 오류를 수정한 뒤 일정 수준 이상의 수율을 확보해야 합니다. 여기서 수율(Yield)은 생산된 칩 가운데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칩의 비율을 뜻합니다.
같은 웨이퍼에서 더 많은 정상 칩을 얻을수록 고객 입장에서는 칩 한 개당 실제 제조비용이 낮아집니다. 그래서 반도체 경쟁에서는 “몇 나노 공정을 보유했는가”뿐 아니라 그 공정을 안정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TSMC가 강한 이유도 최첨단 공정을 먼저 개발하는 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고객이 같은 제조 생태계를 사용하면서 설계도구, 공정 경험, 생산 데이터와 패키징 기술이 축적되는 구조 자체가 경쟁력이 됩니다.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72.5%가 의미하는 것
TrendForce에 따르면 2026년 2분기 글로벌 상위 10개 파운드리의 매출은 약 534억9천만 달러로 전분기보다 11.5% 증가했습니다.
| 회사 | 2분기 시장점유율 | 주요 흐름 |
|---|---|---|
| TSMC | 72.5% | AI GPU·XPU, 3nm·5/4nm 첨단공정 수요 |
| Samsung Foundry | 5.9% | 첨단공정 및 HBM base die 주문 확대 |
| SMIC | 5.4% | PC·노트북, AI 주변 IC, 서버 네트워크 수요 |
| UMC | 3.9% | 성숙공정·서버 관련 부품 수요 |
| GlobalFoundries | 3.2% | 전력·서버 주변 반도체 수요 |
특히 TSMC의 5/4nm와 3nm 생산능력은 AI 서버용 GPU와 XPU 수요로 높은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nm도 2026년 2분기부터 처음으로 매출에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부분도 있습니다. 삼성의 5.9%와 SMIC의 5.4%가 0.5%포인트 차이라고 해서 두 회사가 모든 기술 영역에서 거의 같은 위치에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SMIC의 최근 매출 증가는 PC·노트북 선구매와 AI 주변 IC, 서버 네트워크용 칩 등에서도 나왔습니다. 반면 AI 가속기와 최첨단 로직 반도체에서는 어떤 회사가 첨단공정 고객과 실제 양산 물량을 확보하는지 따로 봐야 합니다. 전체 시장점유율 하나만으로 기술경쟁력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애플과 OpenAI도 직접 공장을 갖지 않는 이유
이 분업은 엔비디아만의 전략이 아닙니다. 애플은 아이폰과 맥에 들어가는 자체 프로세서를 설계하지만 웨이퍼 생산은 TSMC를 비롯한 외부 제조 파트너에 맡깁니다. Apple은 2026년 TSMC 애리조나 공장에서 생산되는 첨단 칩을 1억 개 이상 구매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OpenAI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OpenAI는 Broadcom과 함께 자체 추론용 프로세서 Jalapeño를 설계했지만 칩 설계부터 웨이퍼 제조, 메모리, 보드와 서버 조립까지 한 회사가 모두 담당하는 구조는 아닙니다.
Reuters는 OpenAI의 첫 자체 AI 프로세서 제조를 TSMC가 맡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AI 회사가 칩 설계 역량을 내부로 가져오더라도 첨단 웨이퍼 생산은 여전히 전문 파운드리와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자체칩을 만든다”는 표현을 “자체 공장을 짓는다”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AI 자체칩과 엔비디아가 공존하는 구조에서도 중요한 것은 누가 설계하느냐와 누가 제조하느냐를 분리해서 보는 것입니다.
AI 칩은 파운드리에서 나온 뒤에도 완성되지 않습니다
AI 반도체에서는 웨이퍼 생산 이후의 단계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공식 자료에서 TSMC와 삼성의 파운드를 이용하는 동시에 SK하이닉스, Micron, 삼성전자 등에서 메모리를 조달하고 CoWoS 기술을 패키징에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AI 가속기의 공급망을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칩 설계 → 파운드리 웨이퍼 생산 → 메모리 조달 → 첨단 패키징 → 테스트·보드 조립 → AI 서버
여기에서 HBM은 GPU와 같은 로직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과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HBM은 고대역폭 메모리이고, AI 가속기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서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도록 첨단 패키징을 통해 결합됩니다.
따라서 TSMC의 첨단공정 생산능력이 충분해도 HBM이나 첨단 패키징이 부족하면 최종 AI 가속기 공급은 늘어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메모리가 충분해도 로직 칩 생산이나 패키징이 병목이면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반도체 생산능력이 투자금만으로 빠르게 늘어나지 않는 이유도 이 공급망을 함께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앞으로는 ‘몇 나노’보다 공급망 전체를 봐야 합니다
파운드리 뉴스를 볼 때 흔히 가장 먼저 확인하는 숫자는 시장점유율과 공정 세대입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몇 가지를 함께 보는 편이 더 유용합니다.
- 첨단공정 고객: 실제로 어떤 AI·스마트폰·서버 칩을 수주했는지 확인합니다.
- 수율: 시험생산이 아니라 안정적인 대량생산 단계에 들어갔는지 봅니다.
- 생산능력: 공장 발표보다 실제 웨이퍼 투입과 출하가 언제 늘어나는지가 중요합니다.
- 첨단 패키징: 로직 칩과 HBM을 결합할 패키징 능력이 충분한지 확인합니다.
- 고객 분산: 소수 대형 고객에 집중돼 있는지, 다양한 설계회사를 확보하고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TSMC가 72.5%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확보했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엔비디아·애플·OpenAI 같은 회사들이 직접 공장을 짓는 대신 이런 전문 제조 생태계를 이용하고 있느냐입니다.
반도체 산업은 모든 것을 한 회사가 잘해서 성장한 산업이 아니라, 설계·웨이퍼 제조·메모리·패키징·장비가 각각 전문화되면서 발전했습니다. AI 칩 경쟁이 커질수록 이 분업은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파운드리 뉴스를 볼 때는 “TSMC 몇 %, 삼성 몇 %”에서 멈추기보다 누가 칩을 설계하고, 누가 어떤 공정으로 생산하며, 수율과 HBM·패키징 병목을 누가 해결할 수 있는가까지 따라가 보는 것이 산업의 실제 경쟁력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