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선업을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는 나라인데도 필요한 군함을 원하는 속도로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실제 군함으로 바꿔 줄 조선소와 숙련인력, 공급망의 생산능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SIPRI에 따르면 미국의 2025년 군사비 지출은 약 9,540억 달러로 여전히 세계 1위였습니다. 그런데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현재 계획대로 함대를 늘리려면 미국 조선산업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분석합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국방예산이 얼마나 큰가”보다 “그 돈으로 실제 배를 얼마나 빨리 만들어 낼 수 있는가”입니다.
미국 조선업의 병목은 돈보다 생산능력입니다
2026년 8월 CBO가 분석한 미 해군의 2027년 조선계획을 보면 문제의 규모를 알 수 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대형 수상전투함 건조 작업량은 2035년까지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야 합니다. 향후 30년 전체로 봐도 대형 수상전투함 건조 톤수는 기존 계획보다 약 60% 증가합니다.
CBO 계산에서는 현재 연간 약 1만6,000톤 수준인 대형 수상전투함 생산 작업량이 2035년에는 약 3만5,000톤 수준으로 늘어납니다. 새로운 군함 몇 척을 추가하는 정도가 아니라 조선소가 처리해야 할 물리적인 작업량 자체를 크게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공장을 늘리고 예산을 배정한다고 곧바로 군함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GAO는 2025년 기준 미 해군 전투함을 건조하던 주요 7개 조선사 모두가 해군의 선박 인도 목표를 충족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군함 한 척을 만드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릴까요?
현대 군함은 단순히 큰 철판을 용접해 선체를 만드는 제품이 아닙니다. 추진체계, 레이더, 미사일 발사체계, 전력·통신망, 각종 센서와 전투체계를 하나의 플랫폼에 통합해야 합니다. 설계가 바뀌면 이미 제작한 구역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GAO는 미국 군함 사업에서 설계가 충분히 완성되기 전에 건조를 시작하거나 건조 과정에서 설계가 변경되면서 비용과 일정 문제가 반복됐다고 지적해 왔습니다. 2026년 백악관도 미 해군 조선사업의 문제로 복잡한 설계와 반복적인 설계 변경, 조선사 간 경쟁 및 생산능력 부족을 직접 언급했습니다.
따라서 조선산업에서 “생산능력”은 도크가 몇 개 있는지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충분한 설계인력과 용접공, 배관공, 기계가공 인력, 장비 공급업체와 부품업체까지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용접공이 부족하면 수십억 달러짜리 군함도 늦어집니다
미국 조선업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숙련인력입니다. GAO가 2026년 의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미 해군과 해안경비대 조선업체들은 용접공, 배관공, 기계가공 기술자 같은 숙련 기능직을 채용하고 교육하고 장기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임금뿐 아니라 높은 생활비, 육체적으로 힘든 조선소 근무환경, 기존 숙련인력의 고령화와 은퇴도 영향을 줍니다. 새로 채용한 근로자가 숙련공 수준에 도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문량을 갑자기 늘린다고 다음 해부터 생산량이 바로 두 배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군함 건조가 반도체나 자동차 공장 증설과도 다른 부분입니다. 시설과 장비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여러 해 동안 인력과 공급망을 함께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 조선업을 왜 보기 시작했을까요?
이 지점에서 한국 조선업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만납니다. 한국에는 대형 상선을 반복적으로 건조하면서 축적한 생산관리 경험과 대규모 조선소, 숙련인력, 공급망이 있습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이미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의 유지·보수·정비, 즉 MRO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MRO가 중요한 이유도 있습니다. 새로운 군함을 아무리 많이 건조해도 기존 함정이 정비를 기다리며 장기간 조선소에 묶여 있으면 실제 작전에 투입할 수 있는 함정 수는 늘어나지 않습니다. 미 해군의 2027년 조선계획도 해외 동맹국 조선소를 활용한 단기 정비가 함정 준비태세 개선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화는 2024년 말 미국의 Philly Shipyard 인수를 완료했습니다. 이 점은 특히 중요합니다. 한국 조선사가 한국에서 미국 군함을 계속 만들어 판매한다는 모델보다 한국 기업의 자본과 생산기술을 이용해 미국 안에서 조선능력을 늘리는 방식이 현재 미국 정책과 더 잘 맞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미 군함 2척 건조”는 확정 수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정책과 확정 계약을 구분해야 합니다.
2026년 8월 13일 미국 대통령 메모는 이른바 ‘Finland Model’을 이용해 일정 요건을 충족한 외국 조선사가 초기 최대 2척을 본국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외국 조선사에 자동으로 적용되는 제도가 아닙니다.
외국 업체는 미국에 새 조선소를 건설하거나 기존 미국 조선소의 소유권 또는 과반 지분을 확보해야 하고, 미국인 근로자를 채용·교육해야 합니다. 본국 조선소에서 사용하는 생산기술을 미국 조선소에 이전하고 미국 공급망도 구축해야 합니다. 초기 2척 이후에는 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 구조입니다.
또한 미국법은 원칙적으로 미군용 함정과 주요 선체 구조를 해외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메모는 국가안보상 예외 조항을 활용하는 방식을 제시했지만 개별 계약에는 의회 통보 절차가 필요합니다.
의회의 입장도 완전히 정리된 상태가 아닙니다. 2026년 7월 미 하원을 통과한 FY2027 국방수권법안에는 해외 조선소에서 건조해 USS 군함으로 취역시키는 전투함에 해군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도 들어 있습니다. 9월 14일 현재 FY2027 국방수권법은 아직 최종 법률로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한국이 미국 군함을 건조하기로 했다”거나 “한화가 미 해군 군함 2척을 수주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미국 정부가 심각한 조선 생산능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동맹국의 설계·생산·MRO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조달 구조를 시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조선업에 더 중요한 것은 2척보다 그 다음입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도 초기 군함 몇 척의 수주 여부만 보는 것보다 미국 조선산업 재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는지를 보는 편이 중요합니다.
미 해군의 2026년 조선계획에는 동맹국 조선소에서 보안 민감도가 낮은 대형 선체 모듈을 제작하고 미국에서 최종 조립과 기밀 전투체계 통합을 담당하는 방안도 제시돼 있습니다. 조선소 투자, 디지털 생산기술, 인력교육, 기자재 공급망, MRO, 선체 모듈 제작 등 협력 가능한 영역이 군함 완제품 건조보다 넓다는 의미입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 미국 조선업을 볼 때는 “한국 조선사가 미국 군함을 몇 척 수주했는가”만 확인해서는 전체 흐름을 놓칠 수 있습니다. 미국 내 조선소 생산량이 실제로 늘어나는지, 숙련인력이 확충되는지, 해외 MRO가 확대되는지, 한국 기업의 기술이 미국 조선소에 얼마나 이전되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비를 지출하는 나라라도 조선소와 숙련공, 부품 공급망은 예산만으로 즉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지금 미국이 한국 조선업을 바라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배 몇 척이 아니라 더 많은 군함을 계속 만들고 정비할 수 있는 생산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